작다
차이나타운 입구
개화기 고급요리집 공화춘, 지금은 박물관
청나라 망하고 중화민국 설 때, 황제의 시대가 가고 국민의 시대가 온걸 축하하는 의미로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70년대 외식 풍경, 졸업식 같은 중대한 날에만 짜장면을 먹을수 있었다고 한다
개화기, 중국인이 인천으로 건너와 지었다고 한다
그 손자가 도박으로 가산을 탕진했다던가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모르겠다
문을 괴두는데만 쓰기엔 너무 크고 무거워보이는데
중국식 집
개화기엔 인천이 최첨단 도시로 떠올랐다고 한다
일자리를 찾아 중국인 노동자가 많이 건너온게 차이나타운의 시작이라고 한다
못 사는 조선에 건너올 정도면 당시 청나라 형편도 크게 나을게 없었나보다. 인구가 너무 많아서일 수도 있고.
그리고 외교, 통상 관련 외국인 고관이 많이 살았다. 그들의 별장과 저택이 많다
일자리를 찾아 중국인 노동자가 많이 건너온게 차이나타운의 시작이라고 한다
못 사는 조선에 건너올 정도면 당시 청나라 형편도 크게 나을게 없었나보다. 인구가 너무 많아서일 수도 있고.
그리고 외교, 통상 관련 외국인 고관이 많이 살았다. 그들의 별장과 저택이 많다
조선은행 건물, 박물관으로 쓰인다
옛날엔 작은 크기로도 충분했나보다
은행 옆 일본식 작은 정원
아담하고 호젓하다
은행의 천정
높게 뚫어놓으니 실내 분위기가 다르다
고용계약서, 글씨가 인쇄한듯이 깔끔하다
한국 최초의 기차
미국에서 반조립 해 가져와 만들었다고 한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