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8월 11일 수요일

종이개구리

여섯살 쯤 부터 고등학생때까지 매년 방학땐 할아버지집이나 외가집에 놀러갔다
한번 가면 보통 1주일, 길게는 한달동안 지내다 온다
전라도 시골인 할아버지집은 원시적인 자연이 많고 오리떼 놓아기르는 동네였고
남원 외곽에 붙어있는 외가집은 소도시와 어우러진 놀기 딱 좋은 시골이었다
주로 외가집을 갔는데 방학 맞은 외가쪽 형제들이 모두 모였다
남녀형제 모두 12명이 넘는데 난 서열 세번째
큰형님과 막내가 15살 차이 난다
매년 이벤트가 바뀌었다. 어느해엔 큰 강에 가서 1주일 내내 헤엄치기
다른해엔 광한루와 지리산에서 놀기
겨울방학땐 마당에 물뿌려 얼려놓고 스케이트 타기
어떤해엔 1주일 내내 책장의 책을 읽으며 지냈고
게임기 들어온 해엔 차례 돌아가며 최고점수 기록내기
어느 해는 매일 비디오 두세개씩 보기
내가 중학생 땐 개구리싸움이 외가집에 모인 우리들의 이벤트, 주제였다
종이로 접어만든 개구리
내 한살아래 동생과 나와 형님 이렇게 세사람을 리더로 세 팀으로 갈라 편을 짠다
두발로 걸어다니고 말이 통하는 녀석들은 모두 한다
기저귀 찬 갓난애기들은 아무리 울어도 안끼워준다
말도 잘 안듣고 접을줄 모르기 때문이다
보통 국민학교 다니는 녀석들은 형들 중에서도 따르는 형이 있기 마련이다
팀당 서너명씩 조원이 정해지면 매일 하루종일 개구리를 접는다
그리고 네모난 토방 경기장에서 자웅을 겨루었다. 기술력을 겨루었다
개구리싸움이란, 개구리 엉덩이 접힌부분을 손가락으로 눌러 튕겨서 등의 삼각형부분을 반 이상 덮거나 뒤집으면 따먹기 때문에 심혈을 기울여 최신형 개구리를 연구했다 그래서 하루 100마리 정도밖에 못만들었다
앞다리와 머리부분을 모두 펴서 몸넓이를 두배로 늘린 글라이더형 개구리 (점프하면 살짝 비행까지 해서 멀리 뛴다)
뒤집기 전문 불도저형 개구리
개구리 등의 삼각형부분 절반을 덮기 어렵게 하기 위한 30Cm짜리 대형개구리
심지어는 삼각형부분을 없애버린 밥상처럼 생긴 개구리도 만들었다 (이것은 튕겨야할 접는부분이 없기 때문에 경기에 뛰진 못했다)
그때 지능개발 정말 많이 되었을꺼다
팀의 명예를 걸고 열심히 겨루어 따먹었고, 새로 개발된 성능 좋은 개구리엔 이름도 붙여주었다. 죠스1호 2호 3호 등용문1호 2호 3호 - 마치 소련제 전투기들이 개발자의 이름을 딴 것 처럼
외가집에선 모든일이 다 재미있었다
오후에 큰이모가 아이스크림 한박스 사와서 그 많은 형제들이 모여 먹던 일
총싸움을 해도 분대규모로 편을 갈랐다
외할머니가 매일 닦으시는 매끈매끈한 돌바닥에 누워 하루종일 추리소설과 청소년문학전집 등을 읽다가 등이 차가우니 그대로 낮잠도 잤다
그렇게 책을 재미있게, 많이 읽은적이 없다
겨울엔 눈으로 진짜 성을 지어 눈싸움을 했고, 여름엔 절벽에서 공중회전 다이빙을 배웠다
해가 갈수록 남원의 강물은 조금씩 더러워지고
그때 내 부하였던 친척동생들은 대학생이 되고 군인이 되어 타지에서 산다
그런 한가한 시절이 다시 올 수 있을까

댓글 2개:

  1. 정말 좋은 추억이군요. 돈으로 살 수 없고 억지로 만들수 없는... 저도 개구리 많이 만들었었는데요. ㅋ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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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어린시절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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