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군대 가면 준전시상태로 적과 대치하며 2년을 지내게 될 줄 알았습니다
가기 전엔 관심도 없었고, 그래서 알지도 못했고, 그래서 막연한 두려움 뿐이었습니다
그래도 별다른 송별회도 없이 옆동네 가듯이 보충대에 걸어들어간건, 나보다 그리 잘나보이지 않은 사람들도 대부분 무사히 다녀왔는데 나라고 못할소냐 하는 막연한 자신감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삶은 고기를 안먹습니다. 어렸을때 어머니가 백숙을 몸에 좋다고 억지로 먹이셔서 내키지 않은데 마지못해 먹다가 토해낸 적도 있습니다. 고기의 역한 냄새에 예민합니다.
군대에선 시키는거 안하면 바로 얻어맞거나 영창 갈 줄 알았습니다. 이곳엔 나를 도와줄 부모형제친구도 없고 나 혼자 뿐입니다
첫날 저녁밥으로 백숙이 나왔습니다
국물까지 남김없이 냠냠 먹었습니다. 내일 어떤 무시무시한 강훈련이 시작될지도 모르는데 이거라도 잔뜩 먹어서 에너지를 비축시켜두지 않으면, 낙오되어 큰 창피를 당하거나 치열하게 돌격하다 연습탄의 폭발을 피하지 못해 다칠것만 같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백숙을 먹어 소화시킨 일은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습니다
보충대 첫날밤 변소 문짝에서 본 그 유명한 낙서가 어제일처럼 생생합니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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